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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포커스 이슈

"삶을 숙제가 아닌 축제처럼 살았으면 좋겠다"..한국서 가장 멋진 할머니 '밀라논나'

by 이포커스 2021. 8. 18.

그래픽/곽유민 기자

약 90만명의 유튜브 구독자를 모아들이며 MZ세대의 롤 모델로 꼽히는 밀라논나.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멋진 할머니로 손꼽힌다.

‘밀며든다’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가장 힙한 할머니. 사람들이 ‘밀라논나에게 스며든다’라는 의미로 그에게 붙여 준 말이다. 젊은이들은 왜 이토록 그에게 열광하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까?

그는 우리가 아직 가 보지 못한 우리가 꿈꾸는 ‘좋은 어른’이다. 포용력을 갖췄으면서도 단단하고 무해한 영감을 주고, 성공보다 성장을 권유하는 우리가 닮고 싶은 어른이다.


밀라노 할머니, 밀라논나

밀라논나는 이탈리아의 도시 ‘밀라노’와 이탈리아어로 할머니를 뜻하는 ‘논나’를 합쳐 만든 이름이다.

본명이 장명숙인 그는 1978년 밀라노에서 유학한 첫 번째 한국인이다. 1986 아시안게임 폐막 의상을 디자인했고 유럽 3대 오페라 하우스 중 하나인 스칼라 극장에서 동양복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또한 이탈리아 브랜드 페라가모와 막스마라 등을 우리나라에 착륙시키기도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렇게 패션으로 이탈리아와 우리나라의 교류에 힘썼다는 공헌을 인정받아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명예 기사의 작위를 받기도 했다.

이랬던 그가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개체를 만나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됐다. MZ세대들은 그를 멋쟁이 할머니로, 가장 힙한 할머니로 칭송했고 열풍을 이끌었다.

어릴 때부터 큰 입과 마른 몸매로 못 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는 그녀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옷’을 선택했다. 이후 패션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매력을 느낀 밀라논나. 당시 미니스커트가 금지된 시기였음에도 오히려 미니스커트를 만들어 입으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즐겼다. 오히려 결혼 후 유학길에 오르는 덕(?)에 아들과는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국부 유출을 막는다며 아이들의 출국을 금지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유학 덕에 밀라논나는 수많은 패션계 최초 커리어를 손에 넣게 됐다.


스스로 비춰준 노년의 길

젊은이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패션을 첫 시작으로 어떻게 인생의 방향을 잡고 나아가야 하는지 매일같이 흔들리는 젊은이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밀라논나.

출근을 하면서도 다음 출근을 걱정하는 MZ세대들이 꿈꾸는 노후의 모습을 직접 거울이 돼 보여주며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 이탈리아 브랜드들을 첫 착륙시킨 명품 바이어인 동시에 끈끈한 수하물표로 먼지를 떼는 절약이 일상생활인 그가 한마디 남겼다.

“삶을 숙제가 아닌 축제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그의 탄탄한 내공에서 부는 바람이 MZ세대들에게도 오롯하게 전해지고 있다.

김지수 기자 jisukim@e-focus.co.kr